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매일 골똘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스키를 몇 병씩 비우고, 빵을 씹고, 물통의 물을 마시고, 머리가 모래투성이가 된 채, 배낭을 메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초가을 해안을 계속 걸어갔다.
잡문.
이 글을 읽을 당시에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는 말이 유행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말이 유행할 당시엔 C, 그러니까 Choice에 초점이 맞추어져 한정된 인생에서 무슨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대두되었다. 모두가 B(birth)와 D(Death)사이에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할뿐,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맞서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적어도 이당시에 나는 그러하였다). 하루키는 이 사실을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상기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다'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문장으로 나열하면 마음에 더 와닿는다. 이렇게 명확한 사실을 한번 더 상기하면, 오늘과 현재의 선택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때, 2018년의 나는 내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다. 한번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한창20대 초반을 지나고 있었고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그리고 이 문단에서는 삶이 얼마나 냉혹한지 독자에게 알려준다. 지금까지 알려준 이 진리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치유할 수 없다. 결국 슬픔이라는 건,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야속하게도) 그렇게 슬퍼하면서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 앞에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2018년 여름,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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