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하루키

나오코의 죽음 - 상실의 시대.

by jgo 2022. 10. 5.

문단 전문.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매일 골똘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스키를 몇 병씩 비우고, 빵을 씹고, 물통의 물을 마시고, 머리가 모래투성이가 된 채, 배낭을 메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초가을 해안을 계속 걸어갔다. 

잡문.

이 글을 읽을 당시에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는 말이 유행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말이 유행할 당시엔 C, 그러니까 Choice에 초점이 맞추어져 한정된 인생에서 무슨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대두되었다. 모두가 B(birth)와 D(Death)사이에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할뿐,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맞서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적어도 이당시에 나는 그러하였다). 하루키는 이 사실을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상기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다'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문장으로 나열하면 마음에 더 와닿는다. 이렇게 명확한 사실을 한번 더 상기하면, 오늘과 현재의 선택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때, 2018년의 나는 내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다. 한번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한창20대 초반을 지나고 있었고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그리고 이 문단에서는 삶이 얼마나 냉혹한지 독자에게 알려준다. 지금까지 알려준 이 진리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치유할 수 없다. 결국 슬픔이라는 건,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야속하게도) 그렇게 슬퍼하면서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 앞에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2018년 여름,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2018년 8월 22일 오전 1시 06분. 학교 기숙사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