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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나

바다

by jgo 2023. 4. 29.
나는 이제껏
한 줌 바람없는
침묵의 호수

가끔떠도는 조각배
수면에 통통떠도
금방 썩어 가라앉고

구름도 단비도 없이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가엾은 웅덩이였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비가 내리고 폭풍우 치고
낮의 광채와 밤의 별빛이

한 순간 태어났네
오늘 네가 흘러서
나는 바다가 됐네

<바다의 탄생>
이묵돌

초록을 좋아하는 만큼 파랑을 좋아한다. 삶의 굴곡진 마디마다 나는 습관처럼 바다를 찾았다. 대학에 들어가 사랑의 열병에 빠졌을 때, 군에 들어가기 전, 우울함에 잠겨 약을 먹었을 때,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어김없이 바다를 찾았다.
어떤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살아가다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다. "바다로 가야겠다."
그러면 나는 곧장 가까운 동해로 향한다. 어떤 계획도 준비도 없이. 그리곤 바다를 마주한다. 쏴 하는 바닷소리, 갈매기 나는 소리, 아해들과 어른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한데 섞여서 들려온다. 하염없이, 하릴 없이 그것들을 듣는다.
멍하니 있다 보면,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걱정하던 것들과 지금 내가 처한 좋지 못한 상황들이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이러한 가정은 확신으로 변한다. 삶이란 거대한 바닷속에서는 바람이 부는 것과 파도가 있는 것 비가 내리고 폭풍우 치는 것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다. 볕이 드는 날이 있듯이 폭풍우가 치는 밤도 있는 것이다. 그건 정말로 공이 위로 던져지면 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진리들을 생각하고 지금 내가 지나온 것들에 대해. 또는 내가 지나오지 못한 것들에 대해 사념은 없어지고 평온만이 남는다. 잔잔하게 밀려오고 당겨진다.
나도 누군가의 바다가 되려 한다. 시간을 들여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금 당신이 갖고 있는 사념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며, 우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다는 그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러 갈래의 강들이 흘러 바다로 모여들고 해가 내리쬐어 구름이 뭉치고 그것들이 쏟아져 비가 내리고, 폭풍우 치며 만들어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해가 내리쬐어 우리가 만들어진다. 그것들을 거쳐온 우리들은 다채롭고 각자의 빛을 내뿜으며 존재한다. 정말 소중하고 소중한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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