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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생각

글과 영화

by jgo 2023. 5. 16.
Q. 요즘은 책 말고 영화나 드라마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이 미디어 쪽으로 확장되는데, 영화 감상이 책 읽는 것만큼 교양과 지혜 를 쌓는데 도움이 될까요?

A. 영화는 말하자면 술같은거고요, 책은 물같은거에요. 책은 우리를 좋은 의미에서 차갑게 만들어주고, 영화는 좋은 의미에서 뜨겁 게 만드는데요, 그런데 이성(理性)은 기본적으로 차가운겁니다. 그러니 지금 말씀하신 분의 의견에 따라 답변을 드린다면 "교양에 관한 한, 영화는 책을 영원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理性)의 속성 자체가 물쪽에 가까워요, 불이 아니라.
                                                                                                                                                              -이동진 평론가.
침착맨 원본 박물관

내 원래 전공은 영화/영상 관련이다. 그 때문에, 대학에 다닌 시절에는 영화를 많이 보고 이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자주 작성하였는데, 계속 영화를 보고 글을 읽다 보니 위와 비슷한 궁금증이 일었었다. 내가 감명 깊게 보았던 <마더>, <밀양>, <시>와 같은 영화들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보다도 피부에 와 닿게 교양과 지혜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피부에 와닿게"라는 말에라는 말에 집중하길 바란다. 영화는 청자에게 별다른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어떤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상상할 필요가 없이 그저 화면에 나타난 감독/작가의 인지적 노력의 결과를 보고 듣는다. 감독작가가 전하고싶은 이야기를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빌려 눈앞에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보는 것보다 "피부에 와닿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생각해서 깨닫는 것보다. 보여줌으로써 깨닫는 것이 영화에서는 더 빈번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영화들도 많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경향이다. 어찌 되었든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동진 평론가님이 말씀하신, "영화는 우리를 뜨겁게 만든다"라는 문장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내가 나름대로 생각한 의미를 말하자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더 직관적이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결과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어떤 면에서 수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의 모습들을 보고 희로애락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우리의 마음에 더 뜨겁게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시청각적인 정보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뜨겁다는 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와 일으키는 그 뜨거움은 어쩌면 우리를 살아가게 할 수 있다. 현실의 차가움에서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은 다시 마주한 현실 앞에서 일어설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얼마간의 뜨거움은 필요하다. 이 역할을 영화가 맡아줄 수 있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님이 말씀하셨듯이 "이성(理性)은 기본적으로 차갑"다. 만약, 당신이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고 그것에 대해 일정 기간 숙고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것을 쉬이 잊어버리기도 혹은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가 주는"뜨거움"은 언젠가 사그라들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얻어온 온도가 이성(理性)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일종의 "변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변환의 과정"은 우리의 내면에서 계속해서 곱씹고 우리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책은 영화와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다. 책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고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유(思惟)하게 한다 다. 이 과정에서 책은 영화가 취해야 할 "변환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책에 대한 세계를 조직적으로 구축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보들을 우리 나름의 언어로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양에 관한 한, 영화는 책을 영원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이동진 평론가님의 말에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는 그 매체의 한계 때문에 우리의 이성(理性)적인 사유(思惟)를 어쩔 수 없이 방해한다. 물론, 어떤 영화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그건 이성(理性)이 기능한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우리에게 작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룰 예정이다)결론적으로 우리는 책과 영화 둘 다 적절히 우리 생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영화를 연료 삼아 살아가고 책을 양분 삼아 우리 앞의 문제들을 헤쳐 나가야 한다. 대체로 냉정한 현실은 뜨거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조직해야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히 배분하여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ps. 더 말할 것이 많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졸린 관계로, 오늘은 이만하고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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